“봄이 오면 겨우내 집안에 쌓인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대청소를 하듯, 미술품들도 정기적으로 손질을 해줘야 제 모습 그대로 오래 즐길 수 있습니다. 사계절 기온 차이가 크고 기후 변화가 잦은 우리나라는 열과 물기에 약한 미술품 관리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하지요.”
미술품 보존 연구소 연 김광섭 소장
미술품 보존 전문가 김광섭(49)씨는 “미술품도 사람처럼 태어나는 순간부터 노화의 길을 걷기에 늘 보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일 서울 신정동에 문을 연 ‘김광섭 미술품 보존 연구소’는 이렇게 늙고 아픈 미술품들을 치료하는 그림.조각 병원이다.
건물 로비에 걸려 있는 대형 미술품의 해묵은 때를 벗겨내고 제 모습을 찾아주는 클리닝 작업 광경.
오래 버려져 색이 변하고 금이 가거나 찢어지고 뒤틀린 작품을 손보아 제 얼굴을 찾아준다. 미술품 보존과 복원에 대한 인식이 약한 한국 상황에서 그가 연구소 문을 열고 소장으로 일하게 된 것은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하늘이 내린 복이요, 시대가 준 소명”이다.
“1980년부터 88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 88년부터 2003년까지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4년을 미술품 수복.보존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현장 경험을 풍부하게 쌓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지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이 분야를 독학으로, 또 일본 유학으로 헤쳐가며 차근차근 공부하도록 밀어준 미술계 상황도 고맙고요.”
김소장은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미술품 보존 전문가다. 국립현대미술관 선배인 강정식, ‘최명윤 미술품 보존관리연구소’의 최명윤, ‘정제문화재보존연구소’의 박지선, 삼성미술관의 김주삼,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영호씨와 나란히 병든 한국 미술품을 되살리는 의사 구실을 해왔다.
“오늘 다녀온 강원도 문막 언저리 야외 조각장에는 그야말로 중병을 앓고있는 조각품들이 많더군요. 겨울에 얼었다 녹은 땅이 내려앉으며 조각을 받치고 있던 좌대가 움직였으니 사람으로 치면 관절염이고, 눈비에 금속이 부식한 건 피부염이요, 새똥이 덕지덕지 묻어 원래 색깔을 알 수 없으니 몇년 목욕못한 꼴이 아니겠습니까.”
그의 얘기는 다시 이렇게 이어졌다. “며칠 전에는 한 기업체 건물의 로비에 걸려있는 대형 산수화를 조사했는데 액자 틀에 앉은 먼지를 물걸레로 훔쳐낸 자국이 그림에 시커멓게 테를 둘러 놨더군요. 무관심 속에 망가지고 있는 이런 작품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그러면서 김소장은 “이 분야에서 선진국이라 할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세분화한 전공을 마치고 돌아오는 젊은 인재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설 자리를 마련해주고, 외국 전문연구소와 교류하며, 한국 미술품들이 불로장생(不老長生)하도록 돕는 것이 그의 꿈이다. 설치미술.비디오 아트 등 미술 재료가 다양해지고 완성 형태도 제각각인 현대미술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 연구하는 일을 큰 숙제로 삼고 있다.
“‘김달진 미술연구소(www.daljin.com)’와 협력해 미술품 보존과 수복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전문 사이트를 개설하는 것도 발등에 떨어진 과제지요.”
김소장은 “봄.가을엔 포쇄(曝)라 해서 미술품에 바람을 쐬어주는 전통이 있었다”며 “봄바람이 좋은 요즈음 벽에 걸었던 그림들을 떼어 그늘에서 말려주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02-2693-7678.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작품도 사람처럼 늙고 병들죠”